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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동굴자료 2014. 8. 7. 13:02

Cavers Motto :

                      

                        Take nothing but pictures,              사진외엔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세요,

                        Leave nothing but footprints,         발자국외엔 아무것도 남기지 마세요,

                        Kill nothing but time.                         시간외엔 아무것도 죽이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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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동굴 역사  (0) 2014.08.07
posted by 동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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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동굴자료 2014. 8. 7. 11:08

한국의 동굴 역사

 

 

고구려 보장왕 26년 신라의 대거 침입이 있었다. 이에 놀란 왕이 적조선사를 불러 불상,경전,패물 등을 맡기며 위급한 전란을 피해 이 불상을 신림 속에 봉안하고 향전이 그치지 않도록 하라고 명하였다. 적조선사는 수명의 승려와 더불어 불상을 받들고 피난하던 중 신림이 울창한 용문산 밑에 이르러 은신하기에 적합한 곳이라 판단하고 사방을 살피다가 한 골짜기에 석굴이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선사 일행이 그 속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갑자기 하늘로부터 붉은 무지개가 굴속으로 뻗치며 오색신룡이 나타나 적조선사 일행을 옹호해 주었다. 이에 선사는 이 동굴이 불상을 봉안할 하늘이 내리신 영지라 믿고 그 동굴을 동룡굴이라 이름 짓고 그 속에서 1년이상 전란을 피했으며 그 기념으로 동굴 동쪽 20리쯤 되는 지점에 용문사를 창건하였다. 동룡굴의 역사는 이렇듯 오래 되었으나 주민들은 피난처로서의 비밀을 철저히 지켜왔기에 세상에 알려지지 않고 있었다.

 

 그후 1929 4월이 되어서야 동룡굴은 다시 세상에 크게 알려지게 되었다. 당시 평북 영변 군수로 있던 김예현은 영변의 명승지를 소개하기 위하여 '명승의 연변'이란 책을 만들던 중 이 동굴의 소재를 탐지하고 최완규씨 등의 안내를 받아 현지를 답사하여 동굴내부의 광대함과 금강산을 거꾸로 세운 듯한 천태만상의 선경에 놀라 대서특필로 세상에 알리게 된 것이다. 이 동굴은 지금까지 알려진 세계의 어느 동굴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답다 하여 일약 세계적인 명성과 지위를 확보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후 동굴에 대한 이렇다 할 활동이 없어 세인의 관심 밖으로 사라져가던 중 1958 3월 경북 사대 지질학과 학생 20여명이 경북 울진 성유굴에 들어가면서 한국의 동굴에 대한 관심이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이것이 근대 동굴탐사의 태동이기는 하지만 울진 성유굴에 대해서도 이미 역사에 기록이 되어있다. 신라 보천태자가 이 굴 앞에서 수도하던 중 신령이 현몽하여 득도 하였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해진다. 또 고려말 대학자 이곡선생이 1349 8월 몸소 성유굴을 탐승한 기록이 그의 저서 '관동유기'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최초의 동굴탐험 이기도 하다. 그리고 1961 11월 문화재위원회 조사단(단장 최기철 교수)이 천연기념물 지정을 위한 조사에서 26종의 동식물이 조사된 것이 남한에서 동굴생물조사의 시초가 된다.

 

 동굴 생물에 대한 조사는 18C후반 발칸반도에서 시작되었으며 일본은 1898년부터 착수되었고 한국에서는 1918 6월 평양 근교 청계동에서 외국인에 의해 등줄굴노래기가 채집된 것이 최초이다.

 

 1962년 부터 서울사대 최기철 교수의 권유로 시작된 남궁준 선생의 동굴생물에 대한 개인적인 추구와 연구는 현재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불후의 업적으로 남아있다. 비록 개인적인 활동이었어도 한국 동굴의 명맥을 이어온 원동력이었고 한국 동굴의 산 증인이기도 하다.

 

 1966 1월에는 중앙일보사와 문화재관리국 후원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지형, 지질, 동식물, 탐험을 총 망라한 동굴 종합학술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후 1966 8월 중앙일보사가 주관으로 동굴에 대한 연구와 탐험을 주목적으로 하는 한국동굴협회가 결성되었다. 한국동굴협회는 70년대초반 침체기에 들어갔으나 1973 11월 사단법인 한국동굴보존협회로 개편되어 활동하다 1980년대 들어서 다시 침체기에 들어가 현재는 재기 불능의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었다.

 

 1970 6월 동국대학교 생물학과 학생들을 중심으로 동굴탐험연구회(지도교수 응용생물학과 이해풍 교수, 이학박사)가 발족되어 국내 동굴의 탐험에 대한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들은 과거 엄두를 내지 못했던 국내 최난코스로 꼽히는 모든 동굴들을 탐험하여 차례차례 그 전모를 밝혀내었다. 그들은 80년대 후반부터는 동굴 선진국에 유학하여 앞선 장비와 탐험기술을 도입함으로써 국내 동굴 발전에 큰 획을 긋게 된다. 이들의 활발하고 열성적인 활동으로 탐험장비와 기술적인 면에서는 외국팀과도 어깨를 겨룰 수 있을 만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1973 6월에는 건국대학교 지리학과를 주축으로 한국 동굴학회가 발족되어 꾸준한 동굴활동을 하여 왔으며 80년대 말부터 각 대학에 동굴탐사 동아리가 만들어 지면서 1990년 대학동굴연맹(강원,건국,동국,상지,서원,영남대)이 결성되어 꾸준하고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이들 젊은 이들의 노력으로 동굴탐험 분야는 급속한 발전을 보이고 있으나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그 발전이 상당히 더디고 있다. 그밖에 동굴동호인으로 대륙산악회가 오래전부터 동굴탐험을 시도해 왔으며 박쥐클럽 등의 동호인 단체가 생겼고 동굴환경학회 등의 모임도 생겨났다. 학자들에 의해서는 동굴환경학회, 지하환경학회, 한국곤충학회, 토양생물학회, 거미연구소등이 직간접으로 활동을 하고 있으나 동굴에 대해 큰 성과를 이루기에는 역부족인 상태이다.

 

 한국 동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동호인의 수가 턱없이 적고 중추적인 역할을 할 만한 강력한 단체가 이런 저런 이유로 결성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참고문헌의 구입과 정보의 교류가 원활치 않아 자기분야를 벗어난 부분에 대해서는 거의 대책이 없는 상태이고 실제 동굴만을 추구하고 연구하는 학자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탐험능력이 발전되는 속도에 비해 학문의 미미한 발전은, 특히 동굴생물의 경우 남궁준 선생이 더 이상의 활동을 하지 못하게 될 경우, 이렇다 할 후계자조차 없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아직 지구상의 1/3밖에 발견 조사되지 않았다고 하는 동굴, 남한에서는 약 700여개의 동굴이 탐험 조사되었으나 그 동굴의 숫자를 늘리는 데에만 급급했고 체계적이고 세부적인 조사는 미미한 실정이다. 세인의 인식상 동굴로서의 객관적 가치를 가지고 있는 동굴도 약 300여개가 된다. 현저히 뒤떨어진 시간차를 극복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필자는 혼신의 힘을 기울여 동굴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위한 밑거름이 되기를 자처하는 바이다.

 

자료출처 : 동국대학교 동굴탐험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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